[한국시니어신문]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 탄생은 오프닝(Opening)이고, 죽음은 ‘엔딩(Ending)’일 것이다. 2010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고령층이 인구 25% 이상인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10여년 전부터 ‘슈카쓰(終活·종활)’가 사회적 화두다. 슈카스는 생의 엔딩, 즉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는 활동을 말한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웰다잉(Well-dying)과 비슷한 개념이다.
대부분의 죽음은 느닷없이 닥친다. 소수만이 죽음을 마중할 수 있다. 죽음은 지극히 사적이면서, 공(公)적인 사건이다. 특히 상속 등 법률 문제가 얽혀 있다면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 “우리 일은 고령자의 ‘귀찮은 일’을 해결해주는 것”
일본 엔딩 서포트 협회(エンディングサポート協会, 협회)는 고령층이 인생의 마지막 장을 수월하게 넘길 수 있도록 돕는 사단법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생활협동조합 코프 고베(コープ神戸)가 운영하는 장례업체 ‘클레리(Cleri)’와 효고현 장례사업 협동조합 연합회가 2011년 설립했다.
협회 주요 사업은 ▲유산 정리 및 상속 ▲생전 계약 수탁 ▲사후 사무 위임 ▲장례식 이후 신고 등 의뢰인 사후 행정적 절차를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유족 등을 위한 심리 지원 사업도 진행한다. 협회에 따르면 고객층은 고령층부터 중장년, 1인 가구까지 다양하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신중해야 한다. 협회는 고객이 모든 사항을 두루 따지고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3번까지 무료 상담을 지원한다. 협회 관계자는 “우리는 고령자의 ‘귀찮은 일’을 해결해준다”며 “초고령 사회에서 고령자와 그 가족이 안고 있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끊고, 버리고, 떠난다···고령층부터 1인 가구까지 고객 다양
일본은 2005년 ‘다사(多死) 사회’에 진입했다. 다사 사회는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어서 인구 감소가 가파르게 진행되는 사회다. 매년 일본에서는 130만명이 세상과 작별을 고한다. 2019년에는 태평양 전쟁 이후 최다인 138만 명이 사망했다. 이는 2022년 국내 사망자 수(37만 2800명)의 약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슈카쓰는 이런 분위기 속에 탄생했다. 노인 인구 30%에 육박하다보니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죽음을 준비하자’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단사리(斷捨離·끊고, 버리고, 떠남)’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남은 가족의 부담을 줄이고, 홀가분한 여생을 위해 물건과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다.
현실적 이유로 슈카쓰를 진행하기도 한다. ‘1인 가구’ 이야기다. 고독사 위험이 큰 이들은 “죽은 이후에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엔딩 서포트 협회에 상담을 신청한다. 1인 가구 대다수는 무연고자 또는 찾아올 가족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삶의 뒷정리도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 “마지막은 존엄하게” 한국엔딩라이프지원협회 ‘엔딩 코디네이터’
국내에서도 엔딩 서포트 협회와 비슷한 조직이 있다. ‘엔딩 코디네이터’다. 한국엔딩라이프지원협회(KELSA)가 주관하는 엔딩 코디네이터는 일본 엔딩 서포트 협회, 한양사이버대 실버산업학과,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프리드라이프 등 산학연과 협력해 진행되는 민간 자격증이다.
엔딩 코디네이터는 장례를 비롯해 ▲상속 ▲간호 ▲유품 정리 ▲요양 시설 ▲후견 등 생의 마지막에 필요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고인의 ‘존엄’을 지켜주면서, 각종 행정 절차를 도와주고, 유족의 아픔까지 보듬어주는 것이다.
KELSA 관계자는 “엔딩 코디네이터는 인생을 존엄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직업”이라며 “초고령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비하고, 인생을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밝고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한국시니어신문 양원모] ingodzon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