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니어신문]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격동의 시기를 살아왔습니다. 한국전쟁이 남긴 폐허 속에서 경제 성장과 자유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고도성장의 엔진은 멈추고 백세 시대를 맞아 새로운 도전 앞에 우리 모두는 서 있습니다. 물밀듯 닥쳐오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앞세운 신기술의 발달과 양극화 해소는 물론 후손들을 위한 교육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지금의 시니어들은 지금까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미래를 개척해 왔습니다. 이제 와서 시니어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주니어들에게 떠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시니어들의 미래는 시니어들이 스스로 열어가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아직도 이 시대의 주인공은 시니어들입니다. 당연히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주니어들에게 몸소 보여줘야 합니다.
◇ ‘은퇴’란 단어 사용하지 말아야
‘은퇴(隱退, retirement)’란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내는 것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퇴한 사람은 쓰고 난 후 남은 것을 의미하는 ‘잉여(剩餘, surplus)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은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백세 시대에는 은퇴란 없습니다. 직장에서 퇴직은 할지언정 은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직장에 몸을 담고 일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는 일 없는 백수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도 좋지 못합니다. 일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대가를 받는 일이든 대가 없이 봉사를 하는 일이든 상관없습니다. 몸과 정신을 아껴 오래 사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부지런히 몸과 정신을 움직이는 것이 육체와 정신 건강에도 좋습니다.
종종 노인에 대해 비하하는 말을 듣는다고 시니어들이 분개해 합니다. 당연히 비하하는 사람이 나쁘지만 그런 말을 듣지 않도록 시니어들은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나이든 것이 계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디를 가든 나이부터 밝히며 대접받기를 즐겨 하는 태도는 미숙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주니어에 비해 시니어는 지식과 지혜와 경험을 두루 갖춘 도서관이며 박물관입니다. 시니어들이 자기 자신의 호의호식에 몰두하지 않고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무엇인가 도움이 되려고 애를 쓰면 우리 사회는 시니어들을 공경하는 주니어들로 넘쳐날 것입니다.

◇ 세대 차이를 극복하려면
세대 차를 극복하려면 시니어가 주니어를 막무가내로 가르치려 들면 안 됩니다. 가정의 자녀들도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의 충고와 가르침을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섭니다. 부모가 우산을 받쳐 들고 그 속으로 자녀를 끌어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시니어들은 모든 방면에서 스스로 잘 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주니어와 후손들에게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맞이하는 미래는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정답이란 없습니다. 모범 답안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경험 많은 시니어들이 앞장서서 먼저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합니다.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습관처럼 남의 탓만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남을 탓하는 사람은 못난이입니다.
시니어와 주니어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서로를 향한 질시와 반목을 피하고 세대 간의 갈등을 오히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의 축적으로 받아들이면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시니어는 혼자서도 무엇이든 잘해야 합니다. 시니어의 미래는 시니어가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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