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과거의 성적표'라는 뼈아픈 독설이 '미래의 지도'가 되기까지
때로는 말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 정중앙에 꽂힐 때가 있다. 피를 흘리듯 아프지만, 이상하게도 그 상처가 아물며 새살이 돋아날 때 나는 전보다 더 단단해지곤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나를 강타했던 한 마디는 바로 "오늘의 나는 과거의 성적표다"라는 문장이었다.
가장 어둡고 추운 터널을 지나던 그때, 이 문장은 위로가 되기는커녕 잔인한 판결문처럼 다가왔다. 거울 속에 비친 초라한 현실이, 실은 내가 게을리 보낸 시간들, 무심코 내린 선택들, 제때 버리지 못한 나쁜 습관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으니까.
누구도 원망할 수 없고, 시대를 탓할 수도 없게 만드는 그 '뼈를 때리는' 자각. 그것은 깊은 후회와 자책의 밤을 불러왔다.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그 길로 가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법의 감옥에 갇혀, 받아든 붉은 낙제점이 너무나 부끄러워 숨고만 싶었다.
그러나, 절망의 끝에서 희망은 역설(Paradox)이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왔다.
나를 무너뜨렸던 그 문장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지팡이가 된 순간은 참으로 극적이었다. '과거가 오늘을 만들었다'는 명제는 뒤집어 보면 '오늘이 미래를 만든다'는 희망의 공식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인쇄되어 나온 지난 학기의 성적표는 찢어버릴 수도, 고쳐 쓸 수도 없다. 하지만 다음 학기의 성적표는 백지 상태다. 오늘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책을 펼치며, 누구와 눈을 맞추느냐에 따라 그 빈칸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채워질 수 있다는 깨달음. 그것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발견한 비상구와도 같았다.
그 무렵, 스티브 잡스의 '커넥팅 더 닷(Connecting the dots)'은 내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 되어 주었다.
"지금 찍는 점들이 미래에 어떻게 연결될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그 점들이 언젠가 연결될 것이라 믿어야 합니다."
무의미해 보이는 오늘의 땀방울, 당장은 성과가 보이지 않는 공부, 그리고 치열하게 버텨낸 하루. 이 모든 것이 흩어진 잉크 자국처럼 보일지라도, 훗날 뒤돌아보았을 때 하나의 근사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자책을 멈추고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맬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은 거대한 성적표이자, 동시에 무수히 많은 점을 찍어가는 캔버스다.
오늘 내가 흘린 땀은 결코 땅에 버려지지 않는다. 과거의 성적표를 받아 들고 울었던 나는, 이제 그 눈물로 먹을 갈아 미래라는 종이 위에 가장 힘차고 아름다운 점을 찍고 있다. 그 점들이 모여 그려낼 나의 내일은, 분명 어제와는 다를 것이다.
나의 오늘은, 단순히 과거의 결과물이 아니다. 나의 오늘은, 미래의 내가 받아 들게 될 가장 눈부신 성적표의 첫 줄이다.
[한국시니어신문 김규민 기자] kyumin0213@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