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니어신문] 신조어(新造語)는 새로 생긴 말 또는 새로 귀화한 외래어를 말합니다. 은어(隱語, slang)는 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자기네 구성원들끼리만 사용하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신조어와 은어의 홍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새로운 신조어와 은어가 생겨납니다. 이하 글에서는 신조어와 은어를 묶어서 사용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조어가 갑자기 유행한 것은 아닙니다.
시대마다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지만 어떤 신조어는 생명력을 계속해서 유지하기도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몇 가지 신조어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급식체'는 10대의 은어 문체, ‘어쩔티비'는 “어쩌라고 가서 TV나 봐”, ‘아샷추’는 아이스티 샷 추가, ‘얼죽아’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애빼시'는 애교 빼고 나면 시체,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별다줄' 별걸 다 줄인다 등등입니다.
문제는 이런 신조어를 시니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시대를 반영하는 신조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탄하거나 자괴감에 빠질 이유는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시니어들의 젊은 시절에도 그런 신조어가 존재했었으니까요.
◇ 신조어 배우고 사용하면 좋아
다만 젊은이들은 말이나 글이 길면 지루함을 느끼고 자신들만 아는 신조어 사용을 즐깁니다. 그런 젊은이들과의 원만한 소통을 원한다면 시니어들이 신조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필자도 종종 신조어를 카페에서 주문할 때 사용해 봅니다. 식당에서도 음식을 주문할 때 손님이 길게 말하면 주문을 받는 직원이 주방을 향해 아주 짧은 축약어로 전달합니다. 핵심 단어를 사용하는 축약어를 사용하면 주문을 잘못하는 오류도 방지하고 직원들끼리 소통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겁니다. 긍정적인 사용법의 사례지요.
다만 지나친 신조어 사용으로 자칫 어린 학생들의 어휘력이 퇴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간혹 시니어들이 신조어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젊은이들이 시니어를 따돌리는 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사실 신조어도 알고 보면 별것 아니지요. 그래서 필자는 요즘 스마트폰 메모장에 신조어를 적어 놓습니다. 종종 신조어를 새롭게 알게 되면 자세한 내용을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고 메모합니다. 그러고는 그 신조어를 사용해 봅니다. 때로는 젊은이들도 모르는 신조어를 알면 조금 흥분되기도 합니다. 매주 화요일 중학교 1학년생들을 대상으로 5년째 자유학기제 수업을 하면서 그들의 대화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신조어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학생들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 신조어를 대하는 마음가짐
워낙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너무 긴 말이나 글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조어가 더욱 판을 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말에만 신조어가 있는 게 아니고 영어에도 신조어가 꽤 많더군요. 언어마다 신조어는 계속해서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보면 됩니다. 오늘은 신조어에 대해 시니어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것을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알려고 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잘 모르는 말이나 글은 그냥 흘려보내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신조어를 조금 더 이해하면 할수록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방편이 됩니다. 그래서 스쳐 지나가는 신조어를 붙잡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자는 말입니다. 신조어로 인해 스트레스받지 말고 이왕이면 그 자체를 즐기면서 원만한 소통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 외부 필자의 칼럼 및 기고 등은 한국시니어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시니어신문] news@ksenio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