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니어신문] 가계(家系)는 혈연적 유대의 범위를 결정하는 사회의 출계 원리에 따라 인지되거나 제도화되어 내려오는 한 집안의 계통 체계를 가리키는 가족학 용어입니다. 이는 선대(先代)의 입장에서는 대를 물린 결과이며, 후손(後孫)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선대를 인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여기에서 ‘가(家)’, 즉 집안은 세계(世系)가 거듭될수록 당내(堂內), 문중(門中)과 같은 가족 단위 이상의 조직체 또는 비조직적인 범주로 그 인지 범위가 확산됩니다.
설명이 좀 어렵긴 하지만 가계가 변했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가부장제(家父長制, patriarchy)가 무너졌습니다. 가부장 제도는 대가족 시대에 아버지의 지배(rule of fathers)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에 핵가족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부장 제도는 점차 의미를 잃었고 최근 들어 핵개인 시대가 도래하면서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이슬아 작가의 장편소설 <가녀장(家女長) 시대>에는 출판사 대표인 딸이 모부(부모가 아니고)를 직원으로 채용하며 가장으로 살아갑니다. 아버지는 청소와 빨래 그리고 운전을 담당하고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사무실에서 잡무를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월급이 아버지보다 배나 높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역할이 대체 불가하다고 딸이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2022년 10월 출간됐는데 2023년 8월 이미 8쇄를 찍고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를 반영하는 소설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전히 가족 구성원 중에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장의 권위를 지키려는 시니어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경제력이 예전 같지 않은 부모가 가족들 위에 군림하는 태도는 옳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로 갈등을 빚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가야
시니어들이 자식이 있든 없든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살아가야 할 시대입니다. 특히 남성 시니어는 부모들 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시대를 몸으로 직접 느끼며 지금까지 누렸던 가부장의 권위를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전히 식사 준비는 여성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빨래도 남성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우겨봐야 소용없습니다.
필자의 경우도 결혼한 지 43년이 됐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주방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가부장 제도의 영향으로 장모님이 아내에게 결혼하면 정 서방이 주방에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당부를 아내가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23년 전 장모님이 돌아가셨고 아직까지 바깥에서 일을 하는 아내를 돕기 위해 이제는 매주 집안 청소는 하고 식사도 혼자 직접 챙겨 먹습니다.
특히 얼마 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킬로미터(km)를 걸으면서 매일 빨래와 식사를 혼자 해결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제는 얼마든지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새삼 아내와 모든 여성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일상에서 사소하게 반복되는 일만 스스로 해결한다면 여성들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상을 세워 갈 수 있습니다. 하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음식 만드는 일은 유튜브를 통해 배울 수 있고 가족을 위해 할 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새삼 대가족 시대와 핵가족 시대를 거쳐온 시니어들이 핵개인 시대에 적응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으리라 짐작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우리가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순응하며 가정과 사회의 평화를 위해 양보하고 태도를 바꾸는 것이 현명한 생각과 행동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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