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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친화'는 기술의 배려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의 전략이다 [김규민 칼럼]

김규민 한국시니어신문 발행인/편집인

 

[한국시니어신문] 지난 칼럼(시니어의 불편함은 거대한 시장이다)에서 시니어의 디지털 불편함이 곧 거대한 시장임을 짚었다면, 이제는 그 시장을 선점한 승자들의 문법을 들여다볼 때다. 2026년 현재,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그들은 시니어를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장 까다롭고 중요한 고객'으로 정의한 기업들은 이미 현장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1. 금융의 변신: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가장 보수적이었던 은행권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느린 이체' 서비스다. 이체 과정 중간에 "천천히 확인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보이스피싱 위험 요소를 다시 한번 인지시키는 단계를 넣었다. 이는 속도가 생명인 디지털 금융에서 파격적인 설계다. 결과는 놀라웠다. 해당 앱의 시니어 사용자 유지율(Retention)은 일반 모드 대비 40% 이상 높게 나타났다. 불편함을 기술로 제거한 것이 아니라, 시니어의 심리적 속도에 기술을 맞춘 결과다.

 

신한은행은 ‘시니어 전용 ATM’과 앱 내 ‘간편 모드’를 도입하며 복잡한 금융 용어를 없애고, 아이콘 중심의 UI를 배치했다. 그 결과, 시니어 고객의 평균 업무 처리 시간이 20% 단축되었으며, 상담원 연결 요청 건수는 15% 감소했다.


KB국민은행 역시 ‘KB 시니어 라운지’와 연계된 디지털 뱅킹 서비스를 통해, 인증 절차에서 포기하던 ‘이탈률’을 전년 대비 12%포인트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기술이 사용자에게 맞춰질 때 비즈니스의 효율성이 얼마나 극대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2. 유통과 의료: 인터페이스의 장벽을 허문 현대백화점과 똑닥

 

유통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의 사례가 돋보인다. 이들은 시니어 고객들이 모바일 결제보다 상담원과의 대화를 선호한다는 점에 착안, '대화형 AI 어시스턴트'를 고도화했다. 텍스트 입력 없이 음성만으로 상품 검색부터 결제까지 끝내는 시스템을 구축하자, 60대 이상 매출 비중이 전년 동기 대비 18% 성장했다.

 

병원 예약 앱 시장에서도 승패는 '설계력'에서 갈렸다. 시니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본인 인증' 단계를 가족 계정 공유나 유선 상담 병행 모델로 풀어낸 스타트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의료 플랫폼 '똑닥'은 시니어 본인이 앱을 쓰기 어렵다면 보호자가 대신 예약하고, 시니어는 병원 입구에서 'NFC 태그' 한 번으로 접수를 마치는 '대리 접수 고도화' 기능을 선보였다. 이는 시니어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도 디지털 장벽을 우회하는 영리한 설계력의 승리다.

한 유통 대기업은 인공지능(AI) 음성 주문 서비스를 고도화했다. "쌀 10kg 제일 싼 거로 보내줘"라고 말하면 AI가 과거 구매 기록과 최저가를 분석해 결제까지 돕는다. 화면 속의 작은 버튼을 누르는 대신, 가장 익숙한 인터페이스인 '말'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시니어가 기술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본능에 수렴해야 한다는 '엠비언트 컴퓨팅(Ambient Computing)'의 실현이다.


3. 에이지테크(Age-tech): 복지가 아닌 '표준'이 되는 시대


올해 CES 2026에서 화두가 된 것은 '특화 기술'이 아니라 '보편적 설계'였다. 시니어를 위한 로봇이나 디바이스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전과 서비스에 시니어 친화 인터페이스가 기본값(Default)으로 탑재되기 시작했다. 

 

이제 시장의 질문은 "시니어를 위해 무엇을 추가할 것인가"에서 "무엇을 덜어내어 모두를 편하게 만들 것인가"로 바뀌고 있다. 시니어 친화 설계는 장애인이나 고령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복잡한 환경에서 빠르게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젊은 층에게도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는 환영받는다. 즉, 시니어를 위한 설계가 비즈니스의 글로벌 표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 포용법을 강화하고, 공공데이터 API 개방 시 시니어 접근성 가이드를 의무화하는 등 산업 생태계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기업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시니어를 위한 별도의 서비스를 만드는 비용보다, 처음부터 시니어가 쓰기 편하게 설계하여 모든 세대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배리어 프리(Barrier-free) 디자인'의 경제학이다.


설계가 곧 경쟁력이다

 

2026년 대한민국에서 비즈니스의 성패는 '누가 더 화려한 기술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시니어의 멈춤을 최소화했는가'에서 결정된다. 화려한 인공지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인공지능을 누구나 손쉽게 다룰 수 있게 만드는 '사용자 경험(UX)의 민주화'에 있다. 시니어의 불편함을 비즈니스의 기회로 바꾼 기업들처럼, 우리 사회 전체가 '친절한 설계'를 산업의 기본값으로 설정해야 할 때다. 시니어가 편해지면 한국 경제의 체급이 달라진다.

 

 

[한국시니어신문 김규민 기자] dailyk@kseniornews.com